아시아 최고의 미녀배우 정윤희 최근모습, 남편 조규영, 간통사건, 영화 / 나이,최근사진,성룡, 미모, 70년대 트로이카, 유지인

아시아 최고의 미녀배우 정윤희 최근모습, 남편 조규영, 간통사건, 영화 / 나이,최근사진,성룡, 미모, 70년대 트로이카, 유지인 7월1일 TV조선 ′대찬인생′에서는 70년대 우리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 정윤희씨를 다루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정윤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녀’ 그리고 ‘나는 77번 아가씨’이지요

‘나는 77번 아기씨’는 70년대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여성의 가련한 삶과 사랑을 그렸던 영화로서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나는 77번 아가씨’는 ‘비련의 여주인공’ ‘미모의 여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답니다 정윤희는 1975년 영화 ‘욕망’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는데 데뷔하자마자 각종 cf광고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알렸는데 정윤희의 인형같은 아름다운 미모는 당시 장안의 큰 화제가 될 정도로 대단했었답니다 이제 막 신인으로 데뷔한 정윤희의 선굵은 외모가 시청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린 것이죠 60년대의 문희 이래로 최고의 미녀가 나타났다고 소문이 나면서 정윤희는 70년대 중반 데뷔초부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당시 무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외모’ 하나 때문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며 그 후 아시아가 인정하는 고품격 명품 미모를 바탕으로 해서 수많은 영화들의 당당히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미녀여배우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답니다

정윤희가 활동할 당시인 70년대 중반 우리 연예계에는 정윤희 외에도 2명의 인기 여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바로 유지인과 장미희지요 유지인은 영화 ‘그대의 찬손’ ‘마지막 겨울’ 등의 히트로 세련되고 도회적인 미녀로 이름을 떨쳤으며 장미희는 ‘겨울여자’의 공전의 히트로 스타덤에 올랐지요 그리고 여기에 정윤희가 가세하면서 70년대 중·후반은 정윤희·유지인·장미희의 3대 트로이카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답니다 70년대 미모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유지인과 정윤희 60년대의 트로이카였던 문희·윤정희·남정임이 70년대 초반 결혼과 함께 은퇴하고 난 후 여배우스타 부재에 빠져있던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트로이카 미녀군단이 등장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60년대 트로이카인 문희·윤정희·남정임에 빗대어 정윤희·유지인·장미희를 70년대 트로이카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정윤희·유지인·장미희, 세명의 미녀여배우들은 각자 개성있는 연기와 자기영역을 확보해가면서 70년대 중·후반 동시에 인기와 명성을 쌓아갔던 것이지요 새롭게 구성된 트로이카 미녀여배우 3인방은 서로 경쟁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자신들의 인지도와 명성을 쌓아갔는데 이 중 누가 더 인기가 높았었는지는 단정지울 수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모두 개성들이 강하고 자기만의 트래이드마크가 분명했으며 영화와 드라마, 쇼프르그램 등에서 자기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지만 이들 세명의 미녀여배우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70년~80년대 우리 영화계를 활성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갔던 것은 분명합니다 칼라TV의 보급으로 60년대에는 크게 흥행에 성공했던 우리 영화계가 침체되어 가는 시점에서 이들 트로이카 3인방의 영화들 만큼은 흥행에 성공하고 있었으며 우리 영화산업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이당시 침체기에 빠졌던 우리 영화산업이 트로이카 정윤희·유지인·장미희가 없었더라면 거의 몰락할 수도 있었던 시기였는데 이들 3인방의 활약과 인기 덕분에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 아시아를 주름잡는 영화의 메카로서의 한국 영화계가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7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트로이카 3인방,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아뭏튼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면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트로이카 3인방 중 장미희는 전형적인 동양미인으로서 중장년층으로부터 인기가 많았고 화장품 광고모델로 혜성처럼 나타났던 유지인은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로 드라마 ‘서울야곡’에 출연하면서 젊은층과 중년층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 그녀의 도회적인 미모와 더불어 청순미가 인기의 비결이었지요 그리고 정윤희는 선이 굵고 윤곽이 뚜렷한 서구형미인으로 가장 눈에 띄었는데 세명의 트로이카 중 정윤희가 미모에서는 으뜸이라는 당시 일부 매스컴의 보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대만과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아시아의 최고미인’으로 보도할 정도였으니까 당시 정윤희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답니다 또한 정윤희는 당시 무술영화를 찍기 위해 한국에 자주 방문했던 홍콩배우 성룡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정윤희의 미모를 찬양해서 마치 정윤희와 성룡이 스캔들이라도 난 것처럼 오보가 나기도 했답니다

‘아시아의 최고미녀’ ‘100년만에 한번 나올 정도의 미녀’ ‘역대 한국 최고미녀’ 등 정윤희에게 붙여진 화려한 수식어를 보더라도 그녀의 미모는 70,80년대를 대표하는 고품격 미모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정윤희는 영화 ‘청춘극장’과 ‘77번 아가씨’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으며 그 후 80년대에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이 두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예쁜 외모’ 덕분에 여러 작품에 무임승차했지만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때부터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명실상부한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연기파여배우로 변신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80년, 81년 대종상을 두차례나 수상하면서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앞서가게 되었지요 이당시의 인기와 명성을 인해서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아시아 최고의 미녀배우’라고 극찬하며서 정윤희 스카우트를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나서 출연한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서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였던 정윤희는 당시 유행했던 슬픈 멜로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으며 연기의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70년 중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검증받으며 최고의 인기배우로서 인기의 절정에 섰던 정윤희가 갑자기 스캔들의 한복판에 서게 되면서 우리 영화계와 완전히 작별을 고하게 된답니다 1984년경 정윤희는 현재의 남편인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전무이사와 스캔들이 터졌는데 최고의 미녀배우와 중견 건설회사 임원과의 스캔들, 불륜이라고 신문에서 대서특필했던 사건이랍니다 84년 인기 절정에 서있던 정윤희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이사와 사귀게 되었는데 문제는 조규영이사가 1남1녀를 둔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지요 한참 교재를 해나가던 두사람을 조규영씨의 전부인이 ‘간통죄’로 고소하였으며 두사람은 잠시 낮설은 유치장 신세를 5일간 지기도 하였답니다

결국 조규영씨 전부인과의 합의가 성립되고 고소취하로 다시 풀려난 정윤희와 조규영씨는 1984년 12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후 정윤희는 일체의 방송출연 및 영화출연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가정만을 지켜면서 평범한 주부로서 일생을 살아왔답니다 결혼한 지 30년 동안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과 인기를 묻어두고 오직 가정주부로서만 평범하게 살아온 주부 정윤희씨가 TV조선 ‘대찬인생’에 잠깐 모습을 나타내어 올드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으며 아름다운 옛추억을 다시 상기시키시도 했답니다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대부분의 신세대들은 왕년의 인기여배우 정윤희의 존재감에 대해서 전혀 실감할 수 없지만 부연 설명하자면 70,80년대의 정윤희는 현재 한국에서 최고의 미모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미녀의 아이콘, 김태희와 송혜교와 견줄 수 있는 미모라고 할 수 있답니다 어떤 혹자는 정윤희를 ‘역대 한국 최고의 미녀여배우’라고도 말할 정도이니까 송혜교보다는 좀 더 예쁘다고 할 수 있답니다 ‘대찬인생’에서 정윤희씨의 현재 모습이 잠깐 전파를 탔는데요

정윤희씨의 미모가 여전히 아름다워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답니다 정윤희씨는 1954년생으로서 현재 나이가 61세이신데 아직도 젊었을 때도 선굵은 미모가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84년 연예계에서 은퇴한 후 행복하고 단란한 결혼생활을 이어오던 정윤희에게도 한 때 아픔을 겪게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자신이 낳은 친아들이 미국유학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답니다 정윤희는 남편 조규영씨의 전처와의 소생 1남1녀를 포함해서 2남1녀를 키우고 있었는데요

그 중 정윤희가 낳은 친아들이 미국 유학중에 심장미비증세로 사망했으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겪기도 했답니다 정윤희의 아들은 사망 당시(2011년)에 나이가 23살이라고 하는데 너무도 젊은 나이에 사망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정윤희 아들의 사인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쇼크사라고 합니다 정윤희의 남편 조규영씨는 정윤희의 8세 연상으로 원래 부친이 운영하던 중앙산업개발의 이사로 재직하였다가 현재는 중앙건설의 회장을 맡아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중앙산업개발은 전라도 지역에서 과거 중앙하이츠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아파트 건설붐을 일으켰던 꽤 잘나가던 중견 건설회사입니다

그런데 최근 건설경기의 침체의 영향을 받아 조규영씨가 운영하는 중앙건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네요 지난 2월에 중앙건설은 법원에 회생절차를 밝고 있다고 합니다

➤ 25장 사진으로 보는 1970년대 우리나라 군대 모습들 ➤ 한국 일보TQK

25장 사진으로 보는 1970년대 우리나라 군대 모습들 오늘은 흥미로운 사진들이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1970년대에 군대를다녀오신 분들에게는 추억이,그 이후에 다녀오신 분들은아 이때는 이랬구나 하는

25장 사진으로 보는 1970년대우리나라 군대 모습들입소부터 한명의 해병이 탄생하기까지의사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 – 글로벌 교류 연구회 해병 진해교육기지사령부에입대하는 날부터의 훈련소 생활입니다 입대하는 날부터 한쪽에서는 인원 점검하고,한쪽은 각종 훈련이 시작됩니다    

일사분란한 행동이 되지 않으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아직 사복의 모습들이 눈에 띕니다 일체감을 갖고 단결을 요하는 훈련입니다 스트레칭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해병으로서, 피복들을 받고 있습니다

훈련을 통하여, 입고 있던 옷이 지저분한 상태로각 가정에 배달(소포)되면, 배달된 옷을 보며, 부모님은 군에 입대한 자식을 생각하며,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연병장에서 군대 피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때에 벗었던 개인 피복을 쌓아서각 가정에 소포로 보냈다고 합니다 ▲논산 훈련소 목욕탕굉장히 시원해보이는군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훈련 장면들입니다

 기초 체력과 단결을 요하는 목봉훈련 장면입니다 무겁고 힘겨워도 모두가함께 소리치며 움직였다고 합니다 힘겨워 보이면, 강한 힘을 기른다는명분의 오리걸음과 개구리 뜀뛰기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지쳐있는 그 들에게 휴식을시킨다는 명분으로 훈련시킨 원산폭격입니다 그때 그 시절의 생활관

훈련지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무겁던 M1소총을 꺼꾸로 들고, 오리걸음하는 훈련이 계속됩니다 당시의 사격훈련 각계전투와 철조망 통과 훈련입니다 수류탄 관련 훈련 사진 산악훈련의 종합 훈련입니다

본격적인 산악훈련의 암벽타기 훈련입니다 상륙 침투훈련의 사진 수색 정찰 훈련 사진 공수 기본교육장에서의 훈련 장면입니다 기본 훈련을 마치면 YT휄리콥터에 탑승하여 공수 낙하훈련을 했습니다

중대별 완전무장 구보장면입니다 위 사진 외에도 다양한 훈련들을 통해이렇게 한사람의 해병이 탄생되었습니다

탤런트 한혜숙의 결혼안한 이유와 젊은시절 사진, 나이

한혜숙이 다른 탤런트와 다른 점은 MBC나 KBS 같은 처음 방송국에 데뷔했을 때에 단역과 조연자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인데요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처음에는 단역이나 조연을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한혜숙은 처음 데뷔작부터 주인공자리를 얻어 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MBC에 입사하자마자 ‘꿈나무’에서 여주인공역할을, 그리고 KBS로 이적하자마자 ‘춘향전’의 여주인공역할을 맡는 등, 이렇게 한혜숙은 데뷔할 때부터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터를 받는 등 화려한 연기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한혜숙이 70년대 전반 당시 늘씬한 몸매에 서구적이면서 세련된 미모와 함께 청순미가 짙게 풍기는 그녀의 미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한혜숙의 키는 164cm로 평균키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70년대 초반에 이 정도의 키는 상당히 큰 키에 해당하지요 당시 라이벌이었던 김자옥과 김영애보다 한혜숙이 한뼘 정도 키가 더 크고 늘씬해서, 더욱 세련되게 보였답니다 한혜숙은 그후 다양한 장르의 여러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연기생활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미모 덕분에, 각종 CF모델로 많이 발탁이 되는데, 특히 당시 가장 인기좋았던 화장품 아모레 하이톤화장품의 전속모델로 스카웃되어 활동했답니다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로망은 바로 화장품 CF광고를 찍는 것인데, 한혜숙은 데뷔한 초창기인 71년~73년도에 아모레 하이톤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미모와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훗날 유지인, 이영애, 채시라, 김희애가 톱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데뷔 초반부에 모두 화장품광고를 찍으면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여배우들의 화장품 CF광고는 톱스타로 가는 관문이나 다름 없지요 20대때 한혜숙의 청초한 모습 사진

한혜숙도 톱스타로 가는 관문인 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아마도 한혜숙이 화장품 CF광고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화장품광고 뿐만아니라, 섬유회사 이불광고, 비바라 샴푸광고, 빠이롯트 만년필광고 등 7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TV광고를 찍었는데, 그야말로 70년대 광고의 여왕 노릇을 하였답니다 70년대 전반기까지는 한혜숙의 미모가 여자탤런트 중에서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구요 이 정도 인물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TV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한혜숙은 70~80년대에 여러편의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70년대 한창 인기 좋았던 ‘꿈나무’ ‘춘향전’ ‘꽃피는 팔도강산’ ‘토지’ ‘구미호’ 등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족보’ ‘상록수’ ‘최후의 증인’ ‘두여자의 집’ 등의 여러편의 영화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모의 여배우로 급부상한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80년대 후반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90년대와 2000년대도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여, 다시 왕성한 연기활동을 이어나간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한혜숙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가 맡은 배역은 중년의 어머니역할들을 많이 맡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대섭리 때문이지요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명품연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다 하지요 특히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한혜숙은 개성있고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펼쳐서, SBS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내는 쾌거를 이룬답니다 한혜숙은 70~80년대에는 청순한 미모와 풋풋한 여성미로 인기를 끌었다면, 중년의 나이가 된 2000년대에는 원숙하고 개성있는 명품연기력으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

70년대에 3500: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아모레 화장품광고에 발탁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 탤런트로서 명성을 높였던 한혜숙이 결혼을 아직까지 안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미모를 가진 한혜숙이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자체가 매우 놀랍기만 한데요 미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70,80년대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탤런트로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혔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를 알려면, 먼저 그녀의 집안환경과 종교를 살펴보야 한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도에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사업을 하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엄친딸로 성장하였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밑으로 여동생이 4명이 있는 장녀로서, 한혜숙이 20대의 나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사실상 한 집안의 가장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에서 한혜숙은 밑으로 4명의 동생들을 양육해야하는 사실상 가장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서울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한혜숙은 자신이 많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일찍 산업전선에 나서게 되는데요 여고를 졸업하고 난 이듬해에, 한혜숙은 MBC에서 개최하는 드라마 ‘꿈나무’ 여주인공 모집 오디션에 응모해서,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연기자활동을 하면서도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부담하는 등 가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갔답니다 한혜숙은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불고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다니면서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불공을 들이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하며,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불교와의 친숙한 인연으로 장성한 후,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답니다 한혜숙은 수십년간의 연예계생활을 해오면서도 스캔들이 거의 없었던 연예인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한혜숙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은 오랫동안 불공을 들이면서 자신을 보다 더 엄격하게, 철저하고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혜숙의 타고난 성품자체가 깐깐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제일주의자였기에, 자신을 흐트러짐 없이 관리해왔다고 합니다 그럼 아모레화장품의 광고모델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있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파르타교육, 불교적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신념, 완벽제일주의 성격 이런 요인들이 상호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한혜숙이 남자를 멀리하고, 혼자서 미혼으로 살아오게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불교인으로서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금욕주의적인 신념을 갖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엄격한 성격이 한혜숙으로 하여금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멀리하게 만들고, 이러한 습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것이 아닐까 사료된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방송에 출연해서, 만약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비구니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답니다 이 말이야말로 한혜숙이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그녀의 성품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종교적 가치관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혼자서 4명의 여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학비를 부담하는 등 동생들 양육에 헌신했답니다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는 데에 몰두하는 바람에, 혼기를 놓친 것도 그녀가 독신으로 살게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80년 29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였을 때, 4명의 동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다 대고 양육시켜고, 전부 결혼까지 시켜주었다고 하며, 이렇게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느라고, 정작 자신은 연애를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경제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한혜숙은 결혼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한혜숙은 살아가면서 종교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고, 땅을 구입해서 미국 샌디에이고에 절을 짓는 데에 자신의 땅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만약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비구니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녀의 불교에 대한 신념은 엄청나답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연예계생활을 하면서, 여러군데서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마음속 한켠에 항상 ‘비구니’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을 더욱더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의 목표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타가 아니라, 불심이 두터운 불자로서의 삶이라고 하며, 이러한 그녀의 탄탄한 불심이 그녀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다고 하네요 한혜숙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암자를 하나 지어서 보시하고 싶다고 하며, 그곳에 복지시설을 만들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한혜숙도 한때는 박정희와 관련된 루머나 정주영과의 루머도 나돌기도 했답 물론 이같은 루머들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루머들로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지요 박정희의 서슬이 퍼럿던 시절에, 엄청난 공포독재정치를 펼쳤던 박정희가 70년대 잘 나가던 여배우들을 많이 건드렸다고 합니다

궁정동의 안가는 박정희가 여배우들을 거의 강제로 데려다가 유희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하두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아무 관련없는 여배우들도 도매급으로 함께 연관되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총과 권력의 힘으로 힘없는 여자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성의 노리개로 삼는 파렴치한 일들이 그 시대에는 실제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많이 성숙해지고 발전했으니,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혜숙은 올해 나이가 67이지만, 아직도 동안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곱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랍니다

한혜숙은 원래 독신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며, 한 방송에서 아직도 언젠가는 좋은 남성과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2009년 드라마 보석비빔밥 출연 이후,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않고 있는 한혜숙은 집에서 병으로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면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하루 빨리 방송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모습 더 많이 보여주길 바랍니다

탤런트 한혜숙의 결혼안한 이유와 젊은시절 사진, 나이 – 70년대 청순미인 배우 한혜숙 젊은시절 모습, 근황 미혼인 이유

탤런트 한혜숙의 결혼안한 이유와 젊은시절 사진, 나이 – 70년대 청순미인 배우 한혜숙 젊은시절 모습, 근황 미혼인 이유 한혜숙은 70년대 우리 안방극장의 드라마에서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70년대 한창 TV드라마가 인기를 끌 시기에, 한혜숙은 드라마 ‘꿈나무’로 연기자로 데뷔해서 하명중과 함께 청순한 미모로 명품연기를 펼쳐서 많은 팬덤을 형성했던 70년대의 미녀스타랍니다

한혜숙은 70년대에 드라마 ‘꿈나무’와 ‘춘향전’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장래가 총망되는 유망한 신인으로 스포트라이터를 한몸에 받았답니다 70년대 초반 당시 한혜숙은 김자옥과 김영애와 함께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를 형성하면서, 여러펀의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한혜숙은 ‘꿈나무’에 여주인공 모집하는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꿈나무’ 오디션의 경쟁률이 무려 3500:1이었다고 하네요 즉, 참신성과 청순미를 중시하는 ‘꿈나무’ 여주인공 오디션에 참가한 한혜숙은 35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1위를 하여, 드라마 ‘꿈나무’의 타이틀롤을 맡았다고 합

이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뽑힌 것은, 당시 제작진이 한혜숙의 미모와 장래 발전가능성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1971년도에 자신의 소속인 MBC에서 현 KBS로 이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에 응모하기 위해서였답니다 한혜숙이 71년도에 KBS TV 10기생에 응모해서 또다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드디어 대망의 ‘춘향전’의 주인공 자리를 꽤차게 된답니다 한혜숙이 다른 탤런트와 다른 점은 MBC나 KBS 같은 처음 방송국에 데뷔했을 때에 단역과 조연자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인데요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처음에는 단역이나 조연을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한혜숙은 처음 데뷔작부터 주인공자리를 얻어 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MBC에 입사하자마자 ‘꿈나무’에서 여주인공역할을, 그리고 KBS로 이적하자마자 ‘춘향전’의 여주인공역할을 맡는 등, 이렇게 한혜숙은 데뷔할 때부터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터를 받는 등 화려한 연기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한혜숙이 70년대 전반 당시 늘씬한 몸매에 서구적이면서 세련된 미모와 함께 청순미가 짙게 풍기는 그녀의 미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한혜숙의 키는 164cm로 평균키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70년대 초반에 이 정도의 키는 상당히 큰 키에 해당하지요 당시 라이벌이었던 김자옥과 김영애보다 한혜숙이 한뼘 정도 키가 더 크고 늘씬해서, 더욱 세련되게 보였답니다 한혜숙은 그후 다양한 장르의 여러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연기생활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미모 덕분에, 각종 CF모델로 많이 발탁이 되는데, 특히 당시 가장 인기좋았던 화장품 아모레 하이톤화장품의 전속모델로 스카웃되어 활동했답니다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로망은 바로 화장품 CF광고를 찍는 것인데, 한혜숙은 데뷔한 초창기인 71년~73년도에 아모레 하이톤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미모와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훗날 유지인, 이영애, 채시라, 김희애가 톱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데뷔 초반부에 모두 화장품광고를 찍으면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여배우들의 화장품 CF광고는 톱스타로 가는 관문이나 다름 없지요 20대때 한혜숙의 청초한 모습 사진

한혜숙도 톱스타로 가는 관문인 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아마도 한혜숙이 화장품 CF광고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화장품광고 뿐만아니라, 섬유회사 이불광고, 비바라 샴푸광고, 빠이롯트 만년필광고 등 7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TV광고를 찍었는데, 그야말로 70년대 광고의 여왕 노릇을 하였답니다 70년대 전반기까지는 한혜숙의 미모가 여자탤런트 중에서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구요 이 정도 인물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TV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한혜숙은 70~80년대에 여러편의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70년대 한창 인기 좋았던 ‘꿈나무’ ‘춘향전’ ‘꽃피는 팔도강산’ ‘토지’ ‘구미호’ 등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족보’ ‘상록수’ ‘최후의 증인’ ‘두여자의 집’ 등의 여러편의 영화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모의 여배우로 급부상한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80년대 후반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90년대와 2000년대도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여, 다시 왕성한 연기활동을 이어나간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한혜숙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가 맡은 배역은 중년의 어머니역할들을 많이 맡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대섭리 때문이지요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명품연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다 하지요 특히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한혜숙은 개성있고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펼쳐서, SBS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내는 쾌거를 이룬답니다 한혜숙은 70~80년대에는 청순한 미모와 풋풋한 여성미로 인기를 끌었다면, 중년의 나이가 된 2000년대에는 원숙하고 개성있는 명품연기력으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70년대 청순미인 배우 한혜숙 젊은시절 모습, 근황 미혼인 이유

70년대 청순미인 배우 한혜숙 젊은시절 모습, 근황 미혼인 이유 한혜숙은 70년대 우리 안방극장의 드라마에서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70년대 한창 TV드라마가 인기를 끌 시기에, 한혜숙은 드라마 ‘꿈나무’로 연기자로 데뷔해서 하명중과 함께 청순한 미모로 명품연기를 펼쳐서 많은 팬덤을 형성했던 70년대의 미녀스타랍니다

한혜숙은 70년대에 드라마 ‘꿈나무’와 ‘춘향전’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장래가 총망되는 유망한 신인으로 스포트라이터를 한몸에 받았답니다 70년대 초반 당시 한혜숙은 김자옥과 김영애와 함께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를 형성하면서, 여러펀의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한혜숙은 ‘꿈나무’에 여주인공 모집하는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꿈나무’ 오디션의 경쟁률이 무려 3500:1이었다고 하네요 즉, 참신성과 청순미를 중시하는 ‘꿈나무’ 여주인공 오디션에 참가한 한혜숙은 35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1위를 하여, 드라마 ‘꿈나무’의 타이틀롤을 맡았다고 합

이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뽑힌 것은, 당시 제작진이 한혜숙의 미모와 장래 발전가능성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1971년도에 자신의 소속인 MBC에서 현 KBS로 이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에 응모하기 위해서였답니다 한혜숙이 71년도에 KBS TV 10기생에 응모해서 또다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드디어 대망의 ‘춘향전’의 주인공 자리를 꽤차게 된답니다 한혜숙이 다른 탤런트와 다른 점은 MBC나 KBS 같은 처음 방송국에 데뷔했을 때에 단역과 조연자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인데요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처음에는 단역이나 조연을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한혜숙은 처음 데뷔작부터 주인공자리를 얻어 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MBC에 입사하자마자 ‘꿈나무’에서 여주인공역할을, 그리고 KBS로 이적하자마자 ‘춘향전’의 여주인공역할을 맡는 등, 이렇게 한혜숙은 데뷔할 때부터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터를 받는 등 화려한 연기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한혜숙이 70년대 전반 당시 늘씬한 몸매에 서구적이면서 세련된 미모와 함께 청순미가 짙게 풍기는 그녀의 미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한혜숙의 키는 164cm로 평균키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70년대 초반에 이 정도의 키는 상당히 큰 키에 해당하지요 당시 라이벌이었던 김자옥과 김영애보다 한혜숙이 한뼘 정도 키가 더 크고 늘씬해서, 더욱 세련되게 보였답니다 한혜숙은 그후 다양한 장르의 여러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연기생활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미모 덕분에, 각종 CF모델로 많이 발탁이 되는데, 특히 당시 가장 인기좋았던 화장품 아모레 하이톤화장품의 전속모델로 스카웃되어 활동했답니다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로망은 바로 화장품 CF광고를 찍는 것인데, 한혜숙은 데뷔한 초창기인 71년~73년도에 아모레 하이톤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미모와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훗날 유지인, 이영애, 채시라, 김희애가 톱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데뷔 초반부에 모두 화장품광고를 찍으면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여배우들의 화장품 CF광고는 톱스타로 가는 관문이나 다름 없지요

  20대때 한혜숙의 청초한 모습 사진 한혜숙도 톱스타로 가는 관문인 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아마도 한혜숙이 화장품 CF광고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화장품광고 뿐만아니라, 섬유회사 이불광고, 비바라 샴푸광고, 빠이롯트 만년필광고 등 7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TV광고를 찍었는데, 그야말로 70년대 광고의 여왕 노릇을 하였답니다 70년대 전반기까지는 한혜숙의 미모가 여자탤런트 중에서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구요

 이 정도 인물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TV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한혜숙은 70~80년대에 여러편의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70년대 한창 인기 좋았던 ‘꿈나무’ ‘춘향전’ ‘꽃피는 팔도강산’ ‘토지’ ‘구미호’ 등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족보’ ‘상록수’ ‘최후의 증인’ ‘두여자의 집’ 등의 여러편의 영화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모의 여배우로 급부상한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80년대 후반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90년대와 2000년대도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여, 다시 왕성한 연기활동을 이어나간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한혜숙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가 맡은 배역은 중년의 어머니역할들을 많이 맡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대섭리 때문이지요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명품연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다 하지요 특히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한혜숙은 개성있고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펼쳐서, SBS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내는 쾌거를 이룬답니다 한혜숙은 70~80년대에는 청순한 미모와 풋풋한 여성미로 인기를 끌었다면, 중년의 나이가 된 2000년대에는 원숙하고 개성있는 명품연기력으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 70년대에 3500: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아모레 화장품광고에 발탁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 탤런트로서 명성을 높였던 한혜숙이 결혼을 아직까지 안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미모를 가진 한혜숙이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자체가 매우 놀랍기만 한데요 미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70,80년대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탤런트로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혔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를 알려면, 먼저 그녀의 집안환경과 종교를 살펴보야 한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도에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사업을 하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엄친딸로 성장하였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밑으로 여동생이 4명이 있는 장녀로서, 한혜숙이 20대의 나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사실상 한 집안의 가장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에서 한혜숙은 밑으로 4명의 동생들을 양육해야하는 사실상 가장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서울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한혜숙은 자신이 많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일찍 산업전선에 나서게 되는데요

여고를 졸업하고 난 이듬해에, 한혜숙은 MBC에서 개최하는 드라마 ‘꿈나무’ 여주인공 모집 오디션에 응모해서,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연기자활동을 하면서도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부담하는 등 가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갔답니다 한혜숙은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불고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다니면서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불공을 들이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하며,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불교와의 친숙한 인연으로 장성한 후,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답니다 한혜숙은 수십년간의 연예계생활을 해오면서도 스캔들이 거의 없었던 연예인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한혜숙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은 오랫동안 불공을 들이면서 자신을 보다 더 엄격하게, 철저하고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혜숙의 타고난 성품자체가 깐깐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제일주의자였기에, 자신을 흐트러짐 없이 관리해왔다고 합니다 그럼 아모레화장품의 광고모델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있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파르타교육, 불교적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신념, 완벽제일주의 성격 이런 요인들이 상호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한혜숙이 남자를 멀리하고, 혼자서 미혼으로 살아오게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불교인으로서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금욕주의적인 신념을 갖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엄격한 성격이 한혜숙으로 하여금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멀리하게 만들고, 이러한 습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것이 아닐까 사료된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방송에 출연해서, 만약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비구니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답니다 이 말이야말로 한혜숙이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그녀의 성품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종교적 가치관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혼자서 4명의 여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학비를 부담하는 등 동생들 양육에 헌신했답니다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는 데에 몰두하는 바람에, 혼기를 놓친 것도 그녀가 독신으로 살게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80년 29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였을 때, 4명의 동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다 대고 양육시켜고, 전부 결혼까지 시켜주었다고 하며, 이렇게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느라고, 정작 자신은 연애를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경제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한혜숙은 결혼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한혜숙은 살아가면서 종교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고, 땅을 구입해서 미국 샌디에이고에 절을 짓는 데에 자신의 땅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만약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비구니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녀의 불교에 대한 신념은 엄청나답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연예계생활을 하면서, 여러군데서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마음속 한켠에 항상 ‘비구니’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을 더욱더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의 목표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타가 아니라, 불심이 두터운 불자로서의 삶이라고 하며, 이러한 그녀의 탄탄한 불심이 그녀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다고 하네요 한혜숙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암자를 하나 지어서 보시하고 싶다고 하며, 그곳에 복지시설을 만들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한혜숙도 한때는 박정희와 관련된 루머나 정주영과의 루머도 나돌기도 했답 물론 이같은 루머들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루머들로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지요 박정희의 서슬이 퍼럿던 시절에, 엄청난 공포독재정치를 펼쳤던 박정희가 70년대 잘 나가던 여배우들을 많이 건드렸다고 합니다 궁정동의 안가는 박정희가 여배우들을 거의 강제로 데려다가 유희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하두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아무 관련없는 여배우들도 도매급으로 함께 연관되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총과 권력의 힘으로 힘없는 여자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성의 노리개로 삼는 파렴치한 일들이 그 시대에는 실제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많이 성숙해지고 발전했으니,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혜숙은 올해 나이가 67이지만, 아직도 동안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곱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랍니다 한혜숙은 원래 독신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며, 한 방송에서 아직도 언젠가는 좋은 남성과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2009년 드라마 보석비빔밥 출연 이후,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않고 있는 한혜숙은 집에서 병으로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면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하루 빨리 방송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모습 더 많이 보여주길 바랍니다

탤런트 한혜숙의 결혼안한 이유와 젊은시절 사진, 나이 | KRVBA TV

탤런트 한혜숙의 결혼안한 이유와 젊은시절 사진, 나이 70년대 청순미인 배우 한혜숙 젊은시절 모습, 근황 미혼인 이유 한혜숙은 70년대 우리 안방극장의 드라마에서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70년대 한창 TV드라마가 인기를 끌 시기에, 한혜숙은 드라마 ‘꿈나무’로 연기자로 데뷔해서 하명중과 함께 청순한 미모로 명품연기를 펼쳐서 많은 팬덤을 형성했던 70년대의 미녀스타랍니다

한혜숙은 70년대에 드라마 ‘꿈나무’와 ‘춘향전’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장래가 총망되는 유망한 신인으로 스포트라이터를 한몸에 받았답니다 70년대 초반 당시 한혜숙은 김자옥과 김영애와 함께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를 형성하면서, 여러펀의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한혜숙은 ‘꿈나무’에 여주인공 모집하는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꿈나무’ 오디션의 경쟁률이 무려 3500:1이었다고 하네요 즉, 참신성과 청순미를 중시하는 ‘꿈나무’ 여주인공 오디션에 참가한 한혜숙은  35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1위를 하여, 드라마 ‘꿈나무’의 타이틀롤을 맡았다고 합 니다   이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뽑힌 것은, 당시 제작진이 한혜숙의 미모와 장래 발전가능성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1971년도에 자신의 소속인 MBC에서 현 KBS로 이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에 응모하기 위해서였답니다  한혜숙이 71년도에 KBS TV 10기생에 응모해서 또다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드디어 대망의 ‘춘향전’의 주인공 자리를 꽤차게 된답니다  한혜숙이 다른 탤런트와 다른 점은 MBC나 KBS 같은 처음 방송국에 데뷔했을 때에 단역과 조연자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인데요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처음에는 단역이나 조연을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한혜숙은 처음 데뷔작부터 주인공자리를 얻어 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MBC에 입사하자마자 ‘꿈나무’에서 여주인공역할을, 그리고 KBS로 이적하자마자 ‘춘향전’의 여주인공역할을 맡는 등, 이렇게 한혜숙은 데뷔할 때부터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터를 받는 등 화려한 연기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한혜숙이 70년대 전반 당시 늘씬한 몸매에 서구적이면서 세련된 미모와 함께 청순미가 짙게 풍기는 그녀의 미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한혜숙의 키는 164cm로 평균키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70년대 초반에 이 정도의 키는 상당히 큰 키에 해당하지요  당시 라이벌이었던 김자옥과 김영애보다 한혜숙이 한뼘 정도 키가 더 크고 늘씬해서, 더욱 세련되게 보였답니다  한혜숙은 그후 다양한 장르의 여러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연기생활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미모 덕분에, 각종 CF모델로 많이 발탁이 되는데, 특히 당시 가장 인기좋았던 화장품 아모레 하이톤화장품의 전속모델로 스카웃되어 활동했답니다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로망은 바로 화장품 CF광고를 찍는 것인데, 한혜숙은 데뷔한 초창기인 71년~73년도에 아모레 하이톤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미모와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훗날 유지인, 이영애, 채시라, 김희애가 톱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데뷔 초반부에 모두 화장품광고를 찍으면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만큼 여배우들의 화장품 CF광고는 톱스타로 가는 관문이나 다름 없지요    20대때 한혜숙의 청초한 모습 사진  한혜숙도 톱스타로 가는 관문인 화장품 광고를 찍으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놓았답니다

 아마도 한혜숙이 화장품 CF광고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화장품광고 뿐만아니라, 섬유회사 이불광고, 비바라 샴푸광고, 빠이롯트 만년필광고 등 7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TV광고를 찍었는데, 그야말로 70년대 광고의 여왕 노릇을 하였답니다  70년대 전반기까지는 한혜숙의 미모가 여자탤런트 중에서 단연 톱이라고 할 수 있구요  이 정도 인물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TV광고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한혜숙은 70~80년대에 여러편의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답니다

  70년대 한창 인기 좋았던 ‘꿈나무’ ‘춘향전’ ‘꽃피는 팔도강산’ ‘토지’ ‘구미호’ 등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족보’ ‘상록수’ ‘최후의 증인’ ‘두여자의 집’ 등의 여러편의 영화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모의 여배우로 급부상한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80년대 후반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90년대와 2000년대도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여, 다시 왕성한 연기활동을 이어나간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한혜숙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가 맡은 배역은 중년의 어머니역할들을 많이 맡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대섭리 때문이지요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명품연기로, 드라마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다 하지요

특히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한혜숙은 개성있고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펼쳐서, SBS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내는 쾌거를 이룬답니다 한혜숙은 70~80년대에는 청순한 미모와 풋풋한 여성미로 인기를 끌었다면, 중년의 나이가 된 2000년대에는 원숙하고 개성있는 명품연기력으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 70년대에 3500: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아모레 화장품광고에 발탁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 탤런트로서 명성을 높였던 한혜숙이 결혼을 아직까지 안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미모를 가진 한혜숙이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자체가 매우 놀랍기만 한데요 미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70,80년대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탤런트로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혔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를 알려면, 먼저 그녀의 집안환경과 종교를 살펴보야 한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도에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사업을 하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엄친딸로 성장하였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밑으로 여동생이 4명이 있는 장녀로서, 한혜숙이 20대의 나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사실상 한 집안의 가장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에서 한혜숙은 밑으로 4명의 동생들을 양육해야하는 사실상 가장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서울에서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한혜숙은 자신이 많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일찍 산업전선에 나서게 되는데요 여고를 졸업하고 난 이듬해에, 한혜숙은 MBC에서 개최하는 드라마 ‘꿈나무’ 여주인공 모집 오디션에 응모해서,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연기자활동을 하면서도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부담하는 등 가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갔답니다 한혜숙은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불고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다니면서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불공을 들이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하며,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불교와의 친숙한 인연으로 장성한 후,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답니다

한혜숙은 수십년간의 연예계생활을 해오면서도 스캔들이 거의 없었던 연예인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한혜숙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은 오랫동안 불공을 들이면서 자신을 보다 더 엄격하게, 철저하고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혜숙의 타고난 성품자체가 깐깐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제일주의자였기에, 자신을 흐트러짐 없이 관리해왔다고 합니다 그럼 아모레화장품의 광고모델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있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파르타교육, 불교적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신념, 완벽제일주의 성격 이런 요인들이 상호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한혜숙이 남자를 멀리하고, 혼자서 미혼으로 살아오게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불교인으로서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금욕주의적인 신념을 갖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엄격한 성격이 한혜숙으로 하여금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멀리하게 만들고, 이러한 습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것이 아닐까 사료된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방송에 출연해서, 만약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비구니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답니다  이 말이야말로 한혜숙이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오게된 그녀의 성품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종교적 가치관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혼자서 4명의 여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학비를 부담하는 등 동생들 양육에 헌신했답니다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는 데에 몰두하는 바람에, 혼기를 놓친 것도 그녀가 독신으로 살게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80년 29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였을 때, 4명의 동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4명의 동생들의 학비를 다 대고 양육시켜고, 전부 결혼까지 시켜주었다고 하며, 이렇게 많은 동생들을 양육하느라고, 정작 자신은 연애를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경제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한혜숙은 결혼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한혜숙은 살아가면서 종교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고, 땅을 구입해서 미국 샌디에이고에 절을 짓는 데에 자신의 땅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만약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비구니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로 그녀의 불교에 대한 신념은 엄청나답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연예계생활을 하면서, 여러군데서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마음속 한켠에 항상 ‘비구니’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을 더욱더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의 목표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타가 아니라, 불심이 두터운 불자로서의 삶이라고 하며, 이러한 그녀의 탄탄한 불심이 그녀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다고 하네요

한혜숙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암자를 하나 지어서 보시하고 싶다고 하며, 그곳에 복지시설을 만들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한혜숙도 한때는 박정희와 관련된 루머나 정주영과의 루머도 나돌기도 했답 물론 이같은 루머들은 모두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루머들로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지요 박정희의 서슬이 퍼럿던 시절에, 엄청난 공포독재정치를 펼쳤던 박정희가 70년대 잘 나가던 여배우들을 많이 건드렸다고 합니다

궁정동의 안가는 박정희가 여배우들을 거의 강제로 데려다가 유희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하두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아무 관련없는 여배우들도 도매급으로 함께 연관되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총과 권력의 힘으로 힘없는 여자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성의 노리개로 삼는 파렴치한 일들이 그 시대에는 실제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많이 성숙해지고 발전했으니,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혜숙은 올해 나이가 67이지만, 아직도 동안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곱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랍니다 한혜숙은 원래 독신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며, 한 방송에서 아직도 언젠가는 좋은 남성과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2009년 드라마 보석비빔밥 출연 이후,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않고 있는 한혜숙은 집에서 병으로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면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하루 빨리 방송에 출연해서, 기품있고 원숙한 모습 더 많이 보여주길 바랍니다

70년대 청순미인 유지인, 신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영화, 과거사진, 나이 / 마지막 겨울, 결혼과 이혼사유, 프로필

70년대 청순미인 유지인, 신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영화, 과거사진, 나이 / 마지막 겨울, 결혼과 이혼사유, 프로필 왕년의 미인의 대명사였던 유지인은 현재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방송에 출연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답니다 유지인은 드라마 ‘청담동스캔들’에 출연하면서도 대학에서도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로서 정력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최근 ‘정윤희’의 근황이 알려지면서 70년대 3대 미인 트로이카가 새삼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70년대 중후반 ‘아시아의 대표적 미인’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정윤희’는 정말 그당시 완벽한 미모로 손꼽혔던 미인이었죠 또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미모 못지많게 탄탄한 연기력도 인정받았던 70년대 톱스타였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윤희가 활동했던 70년대에는 미모의 톱스타가 정윤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정윤희 말고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던 또한명의 여배우가 그 시대를 주름잡고 있었는데 바로 여배우 ‘유지인’이랍니다

정윤희가 완벽한 조각미인 소리를 들었다면 ‘유지인’은 이에 질세라 ‘청순한 미인’ ‘세련미 넘치는 미인’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여배우로서 정윤희와 유지인은 동일한 시대인 70년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서로의 미모를 뽐내면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각종 CF모델을 휩쓸고 다니면서 그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지요 정윤희는 선굵은 윤곽이 뚜렷한 미모를 자랑한다면 유지인은 세련미 넘치는 청순 미모로서 서로 다른 개성을 발휘하면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기영역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면서 각기 큰 인기를 누렸었답니다 과연 이 두 여배우중 누가 더 미인인 지, 누가 더 인기가 있었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답니다 딱 두가지만 말할 수 있습니다 유지인과 정윤희가 활동했던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은 두 여배우가 각기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주연으로 활동했다는 점과 그리고 모든 여자연예인들의 로망인 화장품CF 모델에 전속적으로 출연했다는 점이 이 두 여배우 공통점이랍니다

이 두가지 요건을 충족했던 정윤희와 유지인은 그 시대에 톱스타로 군림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유지인은 많은 젊은 남자들의 로망인 ‘청순한 미인’ ‘청순가련형의 미인’의 필요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젊은 남성팬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답니다 지금 59세의 나이인데도 동년배의 다른 연기자보다 훨씬 젊어보이며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어서 신기할 정도이지요 드라마에세 오히려 젊은 여주인공보다 더 예뻐 보이기까지 해서 유지인이 청춘영화에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도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젊음과 미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답니다 50대 후반에도 저 정도이니 그녀가 젊었을 때인 70년대의 그녀의 미모는 오죽하겠습니까?

70년대 유지인의 미모는 한마디로 말해서 국보급이었으며 청순미인의 대명사였습니다 유지인의 미모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고고함’과 ‘정갈함’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지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미인이 아니라 고귀한 품격에서 우러나오는 고품격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지인은 세련미가 특히 돗보였던 미인이였지요 이러한 유지인의 필살 미모에 화장품회사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지요

70년대 당시 쥬단학 화장품(현 한국화장품 전신)에서는 유지인을 화장품 전속모델로 스카웃해서 유지인은 트로이카 중 가장 먼저 화장품 CF모델을 촬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지인이 21살의 어린 나이에 화장품 모델로 선발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미모가 일찍부터 ‘공인’되었음을 의미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화장품 CF모델은 모든 여자연예인들이 가장 찍고 싶어하는 최고의 로망이자 선호도 0순위인데 여성연예인이 화장품 CF모델을 찍고 나면 그녀의 미모는 당시대 최고의 미인으로서 공인받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유지인은 이미 데뷔한 직후 아직 신출내기 시절에 트로이카 중 가장 먼저 쥬단학화장품 CF모델로 발탁됨으로써 ‘공식 미인’ 1호가 되었답니다 유지인의 미모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때묻지 않은 ‘청순한 미인’이라는 것이지요

유지인의 고품격과 더불어 청순한 미모는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 중 가장 돗보이는 유지인만의 매력 포인트이지요 물론 70년대 트로이카가 모두 미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각기 자기 개성이 있고 독특성이 다르지요 장미희는 동양적인 풋풋한 미모, 정윤희는 선굵고 윤곽 뚜렷한 섹시한 미모, 그리고 유지인은 백옥처럼 아름다운 세련미 넘치는 청순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답니다 세명의 트로이카 미인들이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까지 모두 톱스타로 군림하면서 한국 연예계를 3등분하면서 3두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답니다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가 활동하던 이 시기의 우리 연예계에서 이들 세 명의 인기를 능가할 다른 배우들은 전무했습니다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CF모델이면 CF모델 등 우리 연예계의 세분야에서 이들 트로이카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니까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처럼 때로는 협력하면서 때로는 경쟁하면서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는 인기를 삼등분해서 자기영역에서 최고의 연기자로 군림했었지요 유지인은 74년도 영화 ‘그대의 찬손’의 공개오디션에 공모해서 무려 2,3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주연여배우로 뽑혔답니다 과연 이기록이 그 후에 깨졌는지는 확인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고등고시 100대l의 경쟁률보다도 훨씬 높은 2,300: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장 약한 사람은 저런 경쟁률 높은 오디션에 가슴 떨려서 신청조차 않합니다

말이 여배우 공개모집이지 사실상 그시대에는 미인대회나 다름없답니다 정윤희 다시말해 최고의 미인을 뽑는 모집이벤트였다는 말이지요 ‘미스코리아 진’ 보다도 뽑히기가 더 어렵다는 2,300:1의 경쟁률에서 1위로 뽑힘으로써 이미 유지인은 데뷔할 때부터 그녀의 미모가 출중했었다는 증표를 받은 셈이지요 유지인이 나이 19세의 어린 나이에 – 당시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중 – 당당히 공개오디션에서 주연배우 자리를 꽤찬 영화는 ‘그대의 찬손’으로 당시 인기 듀오였던 어니언스의 ‘이수영’과 함께 출연한 것도 크게 화제가 되었었지요

당시 노래 ‘편지’를 크게 히트시켰던 어니언스의 ‘이수영’은 최고 미남가수로 명성이 높았었지요 유지인의 첫 데뷔작품인 영화 ‘그대의 찬손’은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도 당시 최고의 미남가수와 최고의 미녀배우의 출연이 더 큰 화제가 되어 그것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영화의 완성도가 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지인은 74년도 데뷔하면서부터 뛰어난 미모로 큰 화제를 몰고왔었고 그리고 그 다음해에 유지인은 ‘쥬단학화장품’ 광고의 CF모델로 발탁되면서 그녀의 ‘청순미’가 큰 빛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데뷔한지 1년 남짓밖에 안된 풋내기 배우가 당시 최고의 화장품회사의 CF모델로 발탁된다는 것은 또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지요 유지인의 미모가 또다시 공인받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인배우 유지인은 단지 얼굴만 예쁜 배우로만 통했으며 연기력은 평가받지 못했던 시절이었지요 원래 너무 예쁜 여자들은 연기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미모를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지라, 얼굴이 헝클어질 정도로 과감한 액션을 취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이지요, 즉, 자신의 고품격 미모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망가지는 과감한 연기는 몸을 사리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이영애, 김태희도 초창기 시절에는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력은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었지요

반면, 못생긴 연기자들은 원래 얼굴 자체가 가만히 있어도 망가져 있으니까 망가지는 과감한 연기를 너무나 잘합니다 더 이상 망가질 구석이 없기 때문이지요 유지인도 데뷔 초기 2년간은 그랬습니다 그랫던 유지인이 77년 드라마 ‘서울야곡’으로 대폭풍을 몰고옵니다 단지 예쁜 연기자에서 연기력을 갖춘 미모의 뛰어난 연기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지요

77년에 방송된 일일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유지인은 특유의 청순가련한 연기를 너무나도 실감있게 연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녀의 애절하면서도 실감있는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입니다 유지인의 청순미와 눈물 연기가 돗보였던 ‘서울야곡’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유지인은 톱스타로 우뚝 솟아버린답니다 77년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청실홍실’의 장미희와 정윤희도 같은 시기에 스타덤에 오름으로써 이 시기부터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기자로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었고 이 때부터 이들 세명의 스타를 ‘신트로이카’라고 명명하면서 우리나라 연예계에 3두체계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신트로이카’는 60년대 중반부터 71년까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세명의 여배우 – 문희, 윤정희, 남정임 – ‘트로이카’의 인기에 필적할 만한 세명의 새로운 인기스타라는 의미에서 ‘신트로이카’라고 매스컴에서 명명한 것이지요 이렇게 드라마에서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던 유지인은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에게는 당연한 수순인 영화출연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지요

‘마지막 잎새’ ‘심봤다’ ‘내가 버린 남자’ ‘가시를 삼킨 장미’ ‘26 X 365 = 0’ ‘청춘의 덫’ ‘바람불어 좋은 날’ 등 수많은 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영화들은 흥행에도 성공하였지요 이 당시 유지인이 출연했던 영화들은 47편이 넘을 정도였지요 아마도 ‘신트로이카’의 다른 여배우들보다도 더 많은 영화출연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당시 연기자로서 수입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영화 중에서 유지인을 진정한 ‘은막의 톱스타’로 인정받게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78년 유지인과 이영하가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마지막 겨울’이라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영화였지요 ‘마지막 겨울’은 유지인의 인기와 명예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될 만큼 뛰어난 걸작품이 아닐 수가 없답니다 이 영화의 히트로 유지인은 명실상부한 당시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순풍에 돗단 듯 탄탄가도를 달려갔으며 부동의 톱스타로 자리잡게 된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신트로이카’의 팽팽했던 세명의 인기도가 유지인에게로 저울추가 쏠리는 현상이 벌어진 듯 하기도 했었답니다

유지인이 나이 23살 때 13번째로 출연했던 78년도 영화 ‘마지막 겨울’은 너무나도 슬프고 가련한 순정멜로 영화랍니다 유지인은 두 남자 사이에서 겪게되는 사랑의 비애를 유감없이 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표현해 내었고 유지인의 애절하고도 가련한 연기 모습에 관객들을 눈물을 흘리면서도 박수갈채를 보냈답니다 유지인이 맡은 캐릭터가 실제 유지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유지인이 실제로 영화속 주인공 그 자체가 인 것 같은 착시현상까지 느끼게 했던 영화랍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지인 특유의 ‘청순미’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영화랍니다 영화 ‘마지막 겨울’은 우리나라 슬픈 멜로영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영화로써 유지인의 혼과 열정이 담긴 당대의 뛰어난 수작이었답니다

영화 ‘마지막 겨울’의 빅히트로 유지인은 그 후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를 오가며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인기 여배우의 아이콘으로 떠오릅니다 또한 같은 해 찍었던 ‘심봤다’에서 출충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맞보기도 했답니다 그후 유지인은 ‘피막’ ‘내가 버린 남자’ ‘그때 그 사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뛰어난 작품들에 연이어서 출연하는 등 유지인의 인기는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이 지속된답니다 그러다가 86년 드라마 ‘원효대사’를 끝으로 결혼 발표와 함께 화려했던 연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말았답니다 유지인과 딸

유지인은 86년 의사 조모씨와 결혼함으로써 연예인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주부로 지냈답니다 86년부터 2002년까지 유지인은 일체 매스컴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가정주부로서만 살아왔었는데요 2002년 유지인은 갑자기 방송에 복귀해서 올드팬들을 설레이게 했답니다 유지인은 오랜 침묵을 깨고 2002년 드라마 ‘삼총사’에 전격 출연한 것인데 유지인으로서는 결혼과 함께 은퇴한 후 실로 16만에 방송계로 컴백한 것입니다 – 그 중간에 딱 한번 드라마 출연한 적은 있었답니다

유지인의 방송 복귀와 함께 들려온 또하나의 소식은 불행하고도 씁쓸한 소식이었는데 그것은 유지인이 남편 조모씨와 협의이혼했다는 소식이었지요 결혼 하기 전 연예인 시절부터 한번도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정말 모범답안지 같았던 유지인이 16년동안 방송 출연안하면서 가정주부로서만 충실하게 살아왔었기에 그녀의 이혼소식은 뜻밖이었답니다 유지인의 이혼이유는 ‘성격차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내막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답니다 워낙 점잖고 입이 무거운 유지인이라서 진솔한 이혼이유를 밝힐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유지인이 16년 만에 전격 방송계에 컴백한 것은 유지인의 올드팬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 유지인을 다시 방송에서 볼 수 있어서 – 그렇다고 마냥 반가워할 만한 일은 아니랍니다

진정한 유지인의 팬이라면 유지인이 끝까지 이혼하지 않고 영원히 남편과 함께 사는 모습을 기대했을 지도 모르지요 다른 연예인들의 이혼은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유지인의 이혼 만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유지인을 단지 연예인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고한 인격체’로서 존경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지인은 그만큼 워낙 빈틈없고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분이기 때문이랍니다 아뭏튼 연예계로 다시 돌아와서 예전의 ‘트로이카’ 시절 못지않게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해나가시는 모습 매우 보기 좋습니다 또한 유지인은 연기와 더불어 KAC 한국예술원 교수로서 강의도 담당하신다고 합니다